여행, 그 간단한 여정으로부터의 시작

여행, 그 간단한 여정으로부터의 시작


“귀에 꽂은 이어폰을 통해 전류가 흐르듯 감각적으로 흘러나오는 오래된 포크송이 흐르고 나면 다음 트랙인 블루스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지난 쇼케이스들을 생각하며 길을 걷다가 지하철 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겨우 지갑을 꺼내어 바로 앞에 펼쳐진 수많은 개찰구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한다. 행선지도 없는데.


힘들게 하나의 개찰구를 선택했다. 이 개찰구는 분명 특별하다. 특별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것은 선택 받은 것이다. 그 특별함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느낌이다. 느껴야 한다. 지갑을 개찰구에 갖다 대는 순간 개찰구의 디지털 숫자가 눈을 뜬다. 나는 깜짝 놀라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개찰구의 디지털 숫자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쳐다 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다시 깨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실례일 것 같아 그만 둔다.


몇 걸음 걸으니 갈림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반반의 확률, 50%의 확률 문제. 예/아니오 보다는 덜 잔인하지만 좌/우도 만만치 않다.


난 선택할 수가 없다. 내가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를 우측으로 이끈다. 나는 그렇게 이끌려 지하철을 탄다.


이제 선택의 문제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 아. 하지만 그게 정말 큰 실수였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된다. 삼백팔십사 개나 되는 지하철역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50%의 확률보다 더 고통스러운, 그리고 새로운 고문이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시험도 8지 선다형까지 밖에 못 풀어보았다. 삼백팔십사지 선다형이라니. 게다가 단 한 개도 오답을 찾을 수가 없을 뿐더러 문제 또한 삼백팔십사 개나 되는 보기에 하나로써 들어가 있다. 문제도 답일 수 있어.


그렇게 오랫동안 노선도라고 쓰여진 문제지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사람들이 나의 답을 결정해준다. 나는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지도 못한 채 선택할 수 없는 선택으로 내몰린다.


‘이게 아니야’


오늘 내가 단정지은 유일한 문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확신한 유일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이게 아니다. 난 다시 지하철을 타려고 선다. 지하철이 왔다. 지하철의 속도가 점점 느려질 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야. 여기가 맞을지도 몰라. 삼백팔십사 분의 1이지만…’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길 때 나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 받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지하철이다. 난 이번엔 좀 깔끔하게 정리된 문제지 앞에 서있다. 난 되도록이면 보기를 줄여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나를 줄였다. 그리고 두 번째도. 하지만 남은 건 삼백팔십이 개. 아니야. 잘못 지웠어. 다시 삼백팔십사 개. 내가 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보기는 아직 하나도 줄지 않는다.


잠시 느낌으로 평온한 것이 전해진다. 무언가 내겐 정답이 필요한데 이 모든 생각과 판단을 무감각하게 무용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이다. 눈부시게 반짝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나를 높은 곳으로 올려준다.


어느새 나는 잊을 수 있었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한다. 언제나 내가 서있는 곳이 불편한 것처럼. 그리고 불편해도.


문제지의 보기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
그의 질문에 난 심각하게 묻는다.
“안녕하세요. 생각 중 입니다. 몇 번이 정답일까요?”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거야?”
“모른다기 보다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요.”
“그래? 그럼 지금 생각은 어떤데?”
아저씨는 날 정말 도와줄 수 있을까? 난 믿어보기로 한다.
“아직 정리가 안됐어요. 혹시 정답이 무엇인지 아세요?”
“정답이라니?”
난 설명한다.
“나가기 위해서는 정답을 정해야 해요. 하나를요.”
“그래? 그렇다면 내가……”
갑자기 아저씨가 사라진다.


주위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곤 한다. 아저씨가 다시 돌아왔다.
“괜찮으신가요?”
아저씨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묻는다.
“누구냐?”
난 당황스럽다. 이런 문제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새로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인사 드립니다. 헌데 우리는 만난 적이 있지 않은가요?”
아저씨는 생각한다.
“아냐. 난 여기 방금 왔고 넌 내가 여기서 본 첫 번째 사람이야.”
“그렇군요. 저는 방금 제가 본 아저씨와 너무 같아서 같은 분인 줄 알았어요.”
“그래? 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나? 그런데 넌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그제서야 다시 생각이 났다.
“정답을 찾는 중이예요. 아저씨는 정답을 아세요?”
“난 정답이라는 건 몰라.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오로지 지하철 역 뿐이야.”
난 계속 생각한다.
“너 여기 꽤 오래 있었나 보군. 정답도 중요하지만 늦은 것 같은데 급하지 않다면 돌아가서 내일 정답을 찾는 것이 좋지 않겠어?”


이제 생각하기엔 너무 힘이 든다. 아저씨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다시 강요 받았지만 그래도 이젠 그것은 생각할 부분조차 아니다. 생각이 멎은 것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이다. 이젠 돌아가기도 어렵다. 생각은 더더욱 하기 힘들다.


난 늘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결정을 맡긴다. 만나는 사람과 함께 지난다. 그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그녀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선택이란 없는 것 같다. 나도 없는 것 같다.


돌아오는 여정을 위한 여정은 길었지만 그 여정은 길지 않았다.


제대로 내린 것 같다. 이게 정답일 것 같다.


아직도 내 귀에 이어폰이 꽂혀있는 것을 깨닿는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을 정리하며. 그러다 다시 그 포크 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지난 쇼케이스들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 거리는 아무도 손질해주는 이가 없다. 아직도 지하철 역은 삼백팔십사 개다. 포크 송에 이은 블루스 곡이 흘러나올 때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는다. 지하철 역은 삼백팔십사 개다.


(2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