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近況)

“집에는 두 번 다시 얼씬도 하지 마라!”


 3년 전, 어머니께서 내게 했던 말씀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한번도 어머니께 연락을 드린 적이 없었다. 그렇게 집을 뛰쳐 나간 후 정신차렸을 때 바로 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약간은 더 쌀쌀한 크리스마스라는 것과 어머니의 근황을 전혀 모른다는 것.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소식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고 섬세하게 뜨개질된 스웨터를 입고 있어서 조금도 춥지 않았다.


 ‘청송 중학교 10회 졸업생 동창회’


 7년 만에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누구의 안부도 궁금하지 않았다. 지나가는 친구들 마다 지금도 뜨개질을 하느냐면서 7년만의 인사를 내게 건넸다. 그렇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무슨 남자 놈이 뜨개질이야’하는 7년 전의 표정이 그대로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말할 뿐이었다. 문득 그녀가 그리워졌다. 서툰 솜씨로 뜨개질을 하던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이었지만 지금도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한다고 확신했다. 그래도 그녀의 근황은 궁금했디. 그때였다. 그녀가 들어선 것은. 나의 확신을 증명하듯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는 7년이나 지났어도 나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늘 인기가 많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그녀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보다 이전이었다. 나, 정환, 그리고 그녀는 서로 친한 부모님의 관계로 인해 늘 함께 다녔다. 나날이 키가 커지고 멋있어지는 정환이와 원래부터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그녀. 나는 이들과 친구라는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다. 정환이 역시 중학교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었고 남자인 내가 보아도 그가 멋있어 보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녀가 정말 서툰 손놀림으로 목도리를 뜨개질 하고 있었다. 결국 방과후에도 뜨개질을 하던 그녀를 보다 못한 나는 그녀에게서 목도리를 받아 내가 직접 뜨개질을 했다.


“늦지 않았다. 틀림없이 정환이가 좋아할 거야.”


라는 나의 말에 놀라는 표정의 그녀가 목도리를 하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따뜻해. 고마워.”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이후로 그녀는 늘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내게 뜨개질을 배워가기도 했다. 또 가끔은 나보다 먼저 우리 집에 와서 뜨개질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녀가 정환이의 고백을 거절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빨랐고 그녀와 나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잘 계셔?”


“응. 그럴거야.”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나의 어머니에게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자주 우리 집에 왔었다. 이유인즉 나보다 어머니가 더 뜨개질을 잘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식이 최고인지라 어머니께서는 늘 내 자랑만 하셨다고 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그녀가 먼 길을 돌아 우리 집에 왔을 때 늘 나는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늘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집에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왔었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어머니와 자주 싸웠던 때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그녀는 이야기의 끝에 자신도 나의 어머니와 같은 어머니가 계셨으면 하고 늘 바랬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에게 가족이란 아버지와 오빠가 전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그때보다 더 예쁘고 조금 더 슬픈 표정이었다. 그녀는 내게 오래 전에 준비해 뒀던 선물이라며, 지금은 맞을지 잘 모르겠다면서, 선물 박스를 내밀었다.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고는 외투를 걸친 그녀. 나는 그녀가 정환이에게 주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목도리를 보았다. 목도리를 하던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여전히 따뜻해. 고마워”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2차를 가는 친구들. 그들과 함께 걷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따라갔다. 몇 분을 따라 걷다가 차가운 눈덩이가 머리에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의 발걸음은 멈춰 섰고 그녀는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여자친구와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계속 나의 머리를 치는 눈덩이에 항의하듯 그녀가 내게 준 선물 박스를 머리 위로 들었다. 잠깐의 실수로 선물 박스가 열렸고, 그 안에는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그 스웨터와 너무나도 비슷한 스웨터가 있었다. 이 스웨터를 만들어 준 여자친구는 출처는 잘 모른다고 했지만 분명히 이 스웨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스웨터라고 내게 말했다. 문득, 그녀의 근황을 묻지 않은 내가 바보스러웠다.


이제 한 손에는 입고 있는 스웨터와 비슷한 스웨터를 들고, 한 손으로는 눈에 젖어버린 박스를 들고서 더욱 멍한 기분이 되어 약속장소로 향했다. 커피숍 앞,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와 버렸지만 그녀가 미리 와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뜨개질을 하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 익숙한 손놀림. 어머니였다. 몸에 걸친 스웨터와 손에 들린 스웨터가 눈에 젖은 박스만큼이나 내 눈을 적셨다. 그렇게 문득, 어머니의 근황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