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전차남(電車男)

2005년 3분기 후지TV 목요일 10시 방송작. – 평균시청률 21.2%, 최종회 시청률 평균 25.5% (최고 28%)

도대체가 멋대가리 없는 제목이다. ‘전차남’이란 드라마는 제목부터가 틀려먹었다고 생각했었다. 무슨 마초맨의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알고 있다가 관련정보를 찾던 중 ‘시청률이 꽤 높았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곧 ‘촌스런 일본 취향이겠지.’했다. 게다가 주인공 사진을 보고는 더욱 실망해서 ‘역시’하고 보는 걸 미뤄뒀었다. 석주군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차남’을 본 나는 정말 나의 치졸하고 편협한 편견에 반성을 하며 이제 그 위대한 ‘전차남’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전차남?’

전차남은 오타쿠다. 집안에는 온갖 프라모델과 피규어들이. 미소녀가 득실거리는 게임과 DVD, 비디오들이 가득하다. 주말엔 아키하바라에 가서 오타쿠 친구들과 쇼핑도 하고 메이드 카페에 들려 그들만의 담소를 나눈다. 대화는 일반인이 듣기에는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독특한 어휘화 화법이며, 통신체를 구어체로 삼는 집단이다. 이러한 그에게 멋진 여자가 한명 등장한다. 오타쿠와는 전혀 거리가 멀며, 돈많고, 집안 좋고, 늘씬하며, 키도 훤칠하고, 이 모든 이야기는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으로 다 설명이 된다. ‘와~~~’, ‘모델인가봐~’ 그런 그녀가 단지! ‘콘택트렌즈’를 끼지 않은 이유로 우리의 전차남이 오타쿠인 것을 모른채 첫 데이트를 한다. 이후로는 정말 답답하지만 웃을 수 밖에 없는 소심쟁이들의 연애스토리인 아직도 ‘간격은 여전히 한뼘’의 스토리이다.

온라인의 훌륭한 조력자들 – 인간극장의 주인공 오타쿠와 채널2의 폐인들

전차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단순히 고전적인 ‘신분상승’이나 ‘미녀와 연애’이런 측면이라기 보다는-솔직히 전차남이 에르메스를 좋아하는 스토리 그 자체는 지루하고 답답하기 그지 짝이 없다.- 오히려 전차남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가는 주변인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전차남의 이야기와는 달리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하기도 하고 전차남의 이야기 속에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특별판을 포함해서)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 쉽게 사라지고 잊혀져버리는 인물 없이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게다가 시청자가 익숙해지는 시점에 이르면 이들 중 어느하나라도 안보이면 불안해지기 까지 한다. 친절하게도 연출자는 사라진 등장인물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가면 갈 수록 하나둘씩 늘어나기까지 하는데 중요한건 이들 모두 결정적 순간에서 양수기처럼 질질짜고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떠는 우리의 전차남에게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이들이 훌륭한 조력자가 쉽게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매체의 특성인 ‘온라인’의 특성-익명성 등-에 있다. 자신은 그러히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온라인의 특성이 바로 전차남을 만들고 변화시키며 나아가 주변인 모두를 변화시키는 부분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이 스토리는 온라인 찬송가다.

오프의 훌륭한 조력자들 – 진카마(시라이시 미호)

안타깝게도 오프라인에는 대체로 특징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기 보다는 전래동화(아침드라마나 기존의 드라마)같은 곳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게다가 오프라인에서 등장하는 주제와 스토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들로 꽉꽉 차여있다. ‘가족의 불화’, ‘스토커’, ‘애인 뺐기’, ‘사내 갈등’. 너무 뻔한 소재가 진부하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소수의 오프라인 조력자들 때문이다. 전차남에게서 에르메스를 빼앗으려는 사쿠라이는 전형적인 중년으로 나오지만 온라인식으로 재해석되어 과도한 중년의 특징을 남발한다. 오버된 로맨틱같은. 그리고 전차남에게 ‘다스베이더’같은 존재인 진카마(시라이시 미호)는 취직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지만 전차남에게 동요되고 동화됨으로써 새로이 온/오프를 넘나드는 조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이 모두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변화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이 드라마 ‘전차남’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여신(女神) 에르메스(HERMES)

에르메스 역의 이토 미사키를 맨처음 본 것은 런치의 여왕(드라마)에서 였다. 야채가게에서 일하는 ‘토마토’라는 소녀로 나오는 그녀는 당시만 해도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스타일의 키만 큰 여자였다. 77년생인 그녀의 데뷔는 꽤나 늦었고 전차남에 이르기까지는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런 그녀에게 전차남의 에르메스(사오리) 역이 주어진건 일생일대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에르메스는 남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여성상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예쁘지, 돈많지, 말곱게하지, 몸매 좋지, …) 배역 자체가 연기를 못해도 평소에 내숭 떨거나 신비로움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라 이미지로써 승부할 수 있는, 거저 먹는 배역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전차남의 시청자들은 에르메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이게 되고, 그녀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전차남이 전해주는 스토리에 중독되고 마비되어가는 채널2 스레드의 친구들처럼 마치 그녀를 엿보는 듯한 감상에 잠김으로써 그녀의 신비감은 증폭된다. 그 신비감은 매회 소수이지만 1대1의 비율로 보여지는 그녀의 눈물과 미소-시청자의 가슴을 억누르는 그녀의 눈물과 가슴을 벌렁벌렁거리게 만드는 그녀의 살짝 미소-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이러한 신비감은 그와 반대되는 인물, 하도 징징짜대서 이젠 우는게 일상화 되어버렸으며 웃는 것 조차 원숭이라고 비난받는 전차남을 동일한 스토리라인에서 언급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에르메스를 여성 이상의 위치인 여신(女神) 같은 위치에 두도록 만든다.

이외에도 뛰어난 편집과 오타쿠 코드 등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 전차남은 완벽한 트렌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온/오프로 나누며 결정적으로 온/오프의 화면이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전차남은 그 세계를 빠져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모습을 알 수 없는 시청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인물 극화는 취향이 다른 시청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호소할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물론 이들도 여신 에르메스의 미소에는 당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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