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에게 고함

“도망치치마요”

“도망치지 않아요.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예요. 그게 저예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언제나 감독 자신이 생각나게 된다.
이미지. 스토리텔링. 그리고 미장센까지도.

내 청춘에게 고함은 비록 홍상수 영화는 아니더라도 홍상수표 영화라는 것에는 거의 이의가 없을 것 같다,

헌데 조금은 다르다.
다른 것이 앞서 말한 이미지. 스토리텔링. 그리고 미장센이 아니라 소재를 다루는 시각이다.

(이후 스포일러 과다!!!!!!!!!!!!)

대체로 남성성의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홍상수 감독이라면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영화는 성별의 구분없이 보편성의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데 청춘이라는 소재로 자매와 아버지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에
부동산 사기로 인한 누이의 시련과
남자친구와의 대답없는 섹스는 사랑없는 섹스처럼 느껴지는 외로움.
이 모든것이 스스럼없이 변주된 첫번째 에피소드가 결정적 이유이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첫번째 에피소드의 방해로 인해 유부남을 사랑하는 한 여인을 짝사랑하는 남자.
그에겐 청춘이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지 결코 비정규직의 인권보장따위가 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비록 도청에, 몰카에, 모두 불법적인 것이라해도.
그렇게라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청춘이라는 것이니까.

세번재 에피소드의 결정적 단서는 맨 앞에서 말한 대사다.
“도망치치마요”
“도망치지 않아요.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예요. 그게 저예요.”
부인이 바람을 피는 것을 알면서도 늦깍이 군인 김병장은 모른척한다.
모든것이 그에겐 낯설뿐이다.
심지어 그에겐 가장 친했던 친구들까지도 낯설다.

더욱 슬픈건 그가 2년간 군에 있는동안 그가 인지하고 있던 종전의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는 것.
그는 더이상 미래를 낙관할 수도 없고 그렇게 그의 뒤바뀐 관계를 극복하기 보다는 도망치는데 급급하다.

그런 그가 가진 인간관계에세 선택하게 되는 것은
부대 후임이자 자신처럼 결혼하고 들어온 이상병의 집에가서 그의 부인을 도와주는 것과
과거 기억에 또렷히 남아있던 사랑에 실패한 여자와 자신의 일상에 섞여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그의 말처럼 결코 도망치지 않지만 멀리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그는 부인과 섹스를 나누고 기어코 확인을 하려하지만 상처만 확인한다.
결정적으로 그는 우연히(?)마주치개되는 부인의 외도현장에서도 기어코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뿐이다.
그런 그가 답답한 그의 애인은 그런 그에세 해주고 싶은 말을 부인의 신발을 겆어차는 걸로 대신한다.

모든 것은 청춘일 뿐.
청춘이라서 용납되는 것일 뿐.
저물어가는 청춘이라도 청춘의 선택은 청춘일 뿐이다.
바보같은 청춘.

너무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기대를 앞으로 해도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