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part#1 ; 대중가요 -'소방차'부터 'GOD'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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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초딩시절….

처음으로 접한 대중음악은 당연히도 소방차였다.

멋진 무대 매너와 율동은 당시 세인의 화제였고

그들이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굿바이 공연을 할때만해도

전국의 10, 20대는 쓰러져갔다.

도건우, 정원관, 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명으로 구성된 소방차.

이후 변집섭의 연일터지는 발라드 폭격은

신승훈의 출현으로 비등해졌다가 신승훈 2집, 보이지 않는 사랑과 함께

서태지의 등장은 변집섭의 꽤 괜찮았던 4집 앨범을 파탄으로 이끌었다.

이후 변집섭은 거의 재기다운 재기를 못했다.

이동안 스쳐지나가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가수는

이덕진-내가 아는 한가지

박정운-오늘같은 밤이면

이범학-이별 아닌 이별

심신-오직 하나뿐인 그대; 놀랍게도 복귀했다.

이상은-담다디

박준하-너를 처음만난 그때(MBC 무동이네집 삽입곡)

등등등 수도 없지만 우선 접고…

개인적으로 서태지의 대중성과 상업성이 눈에 보였는지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태지 이후의 댄스 가수들은

정말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당시 서태지와 율동으로 승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수였던

현진영은 불미스런 사건으로 지금은 나이트를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신승훈이 매번 같은 스탈로 점차 허접해 지고

상대적으로 비교되는것은 이승환과 015B.

솔직히 015B의 음악은 정말 멋진 음악이었다.

앨범마다 보이는 그들의 정성은 앨범 구매자가 CD를 사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앨범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좋은 가수들의 앨범은 점점 사정되어 가고

HOT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가요계는 빠질 수 없는 삽질에 들어갔다.

결국 10대로만 무장한 춘추전국시대는 약 4,5년간 지속되었고

멋진 락커들과 발라드 가수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앨범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음반 매장에서 구입하면 되지만 당시 오프라인 매장은

없으면 그만인 XX같은 매장이었다.

하지만 중딩때 부터 알아온 동암역의 ‘bLUE nOTE’에서는

아저씨의 나와의 비슷한 취향으로

나는 kENNY lOGGINS와 많은 가수들을 알게되었고

급기야는 중딩2부터 서양물을 들이기 시작하다

HOT 출시 이후로는 아예 눈을 돌렸다.

아마 그때 유일한 희망 015B가 해채했다.

전람회도….

하지만 이승환, 윤종신, 유희열, 전람회, 패닉으로 대변되는 남아있는 진영은….

고딩 이후의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 손떼지않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이승환 5집 CYCLE은 최고의 음반이며 이승환이

단순한 까수가 아닌 것을 해주었다.

이미 4집 HUMAN으로 부터 예견케 해주었지만 그앨범 발매에도

구설수가 많아서리.. –;;

어쨌든 우리나라 가요계는 SM의 쓰레기적 마조히즘의 발광에 따라

HOT가 사장될 위기에 처하고 SES가 버림받기 직전까지 가는등….

결국 이 시기를 전후하여 개인적으로 힙합과 랩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가요의 숨겨진 그룹들도 듣기 시작했다.

에미넴과 GOD, 퍼프 대디, 노토리어스 BIG, 조 PD 등으로 대변되는 문화는

GOD가 역시 우리나라의 예의 그 않좋은 음반 문화의 산물인것은 분명하고

그들이 뜨게된것도 국내판 트루먼 쑈임에 비추어보았을 때

쩝.. 찝찝한 면도 있지만 노래가 좋던데… 멀…

어쟀거나 아직도 댄스 일관인 우리나라의 가요계는 삽질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콘서트가 넘쳐나고 진정한 가수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시대는 오프라인이 아닐까?

게다가 2000년도 최고의 가수는 ‘퍼니 파우더’다!

음홧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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