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었던 사나이 (A Man Who Was Superman, 2008)
코미디, 드라마 | 2008.01.31 | 102분 | 한국 | 전체 관람가
연기력의 변신이나 스타일의 변신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나 이미지가 워낙 고정되어 있는 배우에게 그런 변신은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도 다른 이미지나 배역으로서 성공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들에겐 언제나 극찬이 잇따른다. (연기력과 성공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보여준 전지현의 연기를 보면서 이젠 그녀도 그런 수준의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의 여배우들이 ‘고급’과 ‘시장성’의 둘레에 갇혀서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성향이 특히 심해지는 현재 시점에서 그녀의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과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된 의상과 피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황정민 역시 그간의 ‘연기력’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단편에서 출발한 서정적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섬세한 연기가 필요하다. 그랬던 이 영화에서 두 배우는 서로가 실제 황정민, 전지현이라는 두 배우를 잊어버릴 만큼 자연스럽게 흐르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다지 길게 끌 수 있을 만한 스토리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다큐멘터리적인 사건에 대한 접근을 사용함으로써 단편적인 사건을 재구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이러한 영화들이 이미 각색의 과정에서 무너져 내리는 사례를 보았을 때 적절히 부여하는 긴장과 함께 비교적 섬세하고 좋은 스토리를 보여준다. 극중 황정민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편견에서부터 냉소적인 감정까지 가진 대중보다도 더 냉소적인 극중 전지현의 인물로 하여금 접근하게 해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바로 이러한 점이 [말아톤]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정윤철 감독의 능력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일반적인 감동스토리나 성공스토리라기 보다는 주인공 한 명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점으로서 두 가지 관점으로 다큐멘터리식 스토리를 보여준다. 전지현이 그 동안 제작한 다큐멘터리들. 그런 입장에서 황정민에게 접근하는 전지현. 하지만 기본적으로 PD가 바라보는 피사체로서 바라보던 영화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PD 그 자신에게 이동하는 데에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황정민을 뒷조사하고 하나씩 사실을 알아가는 전지현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계속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그 동안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지 못했던 부분과 함께 책임의 문제와 결부되어 갈등을 겪는다. 최소한의 예의로서 그녀가 그에게 해주는 마지막 배려는 이미 그녀가 알고 있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다를 바 없이 스토리가 펼쳐질 것임을 짐작하면서도, 결국 이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해피 엔딩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슈퍼맨이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나이의 이야기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로 기억하고 싶은 여성 PD의 이야기 둘로 양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