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2007)
대책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솔직한 심점이다.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 자신의 희망사항이자 4,50대의 로망에 가까운 영화이다. 영화는 개연성도 없고, 동기부여도 약하고, 이상도, 현실도 모두 빈약하지만 사람들을 내모는 사회의 모습과 음악만이 진실로 다가온다.
친구의 죽음. 현재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매우 매끄럽고 무난하다. 오히려 ‘무난하다’라는 단어의 사용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탄탄한 연출과 끊김없는 흐름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영화의 흐름이 멈추지 않을 만큼 영화는 계속 흐른다. 영화를 보는 동안 딱 한 번-활화산이 홍대에서 공연할때 삽인된 인서트 컷들-만 불편함을 느꼈을 뿐이다. 실제로 영화가 끝나는 무렵에는 주,조연,단역할 것없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트랜스픽션, 노브레인의 카메오로 열광을 더하는 음악까지 곁들여 이상적인 형태의 영화로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진짜 대책 없다. 엔딩이 워낙 비현실이니까 등장인물 마저도 비현실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물며 모든 것을 버리고 밴드를 택하는 주인공들의 동기부여마저도 비현실적이고 모자라 보인다. 성공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많은 캐릭터와 이야기 구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4명의 캐릭터 중 장근석 역할의 캐릭터를 빼고는 혼자 소화할 수있을 정도로 개연성이 없다. 오히려 쿼텟을 위해 캐릭터의 특성을 강제로 부여해준 듯한 인상이 짙다.
예컨대 혁수의 스토리는 너무 무심하기 짝이 없고 음악만큼이나 가볍게 흘러간다. 성욱의 스토리는 혁수만큼이나 일반성을 뛰어넘어 자아 실현의 극치를 위해 달린다. 주인공 기영의 스토리는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이 모두 채우고 있다. 기영의 집에는 거의 갈등이란 것이 없다. 생겨도 쉽게 해소되는데 어떻게 해소되는지 안보여준다. 이것은 바로 그 수많은 청춘, 멜로 영화들이 고백하는 장면과 헤어지는 장면만 줄창나게 보여주면서 사귀는 동안의 이야기는 훌쩍 빼먹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마지막의 공연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화해와 행복의 나라로 빠져드는데 그 개연성이 약하다. (하지만 왜 기러기 아빠 혁수만 공연이 끝나고서도 행복하지 못할거란 생각이 드는걸까.)
그래도! 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더 새롭게, 어떻게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만큼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다. 즐거운 인생이니까. 그다지 그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쉽게 생각하며 넘겨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생각없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말하지만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중년들의 로망이다. 로망은 로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바라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서 로망은 로망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달라가는 로망을 위한 중년들과 로망을 잊거나 혹은 그리워하는 중년들의 이야기이다.
덧. 고아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애들도 발육이 점점 빨라지는구나 생각했다. 분장의 탓인지는 몰라도 고아성과 장근석을 처음에 알아보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