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암은 모든 기관으로 전이되었다. 암세포가 커지면서 심지어 그가 종전에는 있는지조차도 몰랐던 기관들이 자신의 몸속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가 주름지고 말라비틀어진 핏줄이 보이는 자신의 목에 새끼손가락만한 구멍을 내고 차디찬 얼음같은 투명한 튜브를 끼운 모습을 보면 과연 그가 튜브를 끼고 있는 것인지, 튜브라 그를 꿰어놓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병세는 7년 전 그의 회사 이전 때문이다. 그는 대기업에 입사하고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냈었다. 그런 그가 나이 40이 되더니 회사를 차리기 위해 사표를 냈다. 그의 도전정신은 누라도 놀랄 만큼 과감했고, 진보적이었고, 또 시의 적절했다. 그의 회사가 자리를 잡고, IMF의 위시에서도 꿋꿋이 버텨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경영의 귀재’라는 둥의 흔치 않은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그런 그에게 선택의 시간이 왔다. 좀더 많은 이윤과 성공을 위해, 그는 과감히 사업 확장을 결정했다. 그는 회사를 좀 더 넓은 곳을 이전했다.
하지만 끝날 줄 모르던 그의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이전을 위해 자금을 빌렸던 은행이 다른 은행에게 인수당하고, 자신의 보증인마저 파산해버려, 그에겐 날마다 재정적인 압박이 들어왔다. 회사를 이전했지만 아직 완공을 보지 못한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고, 2년 후 그는 후두암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부인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당신이 떠나야한다고 했기에 그는 묵묵히 자신의 병원으로의 이전을 택했다.
1년 전, 그에게 폐암의 진단까지 내려졌다. 4년 동안 꿋꿋이 버틴 그에게 다른 암의 선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날마다 괴팍해졌고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하지만 그의 곁을 항상 지켜주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의 딸. 그녀는 그의 회사가 이전했을 때도, 그가 집에서 쫓겨났을 때도, 항상 뒤에서 보살펴 주었다. 그런 그가 암 선고를 또 받았을 때에는 그녀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더 큰 병원으로 이전해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젓이라곤 옆에서 간호를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녀에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회사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녀는 처음에 그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그가 그녀에게 부탁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소원임을 알고, 봄이 돠는 3월에 그의 회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3월은커녕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한 채 목에 튜브를 끼우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가 끝나고 그의 딸은 회사를 찾았다. 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땅은 그의 회사를 짓기 위한 자재들이 풀숲에 뒤덮여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풀숲에서 한참동안 서 있다가 우연히 예전에 사람들이 드나들던 길로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그녀는 그 길의 흔적을 찾아 풀숲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그녀를 커다란 문이 있던 곳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붉게 녹슬어버린 문고리를 돌렸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필시 그녀의 아버지가 완공을 보고 싶어 했던 그 건물이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눈앞에는 빛이 마구 새어 들어오는 완공되지 않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너무 눈이 부셔서 그만 고개를 돌리며 손바닥으로 빛을 막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걸어 둔 듯싶은 액자가 있었다. 그 액자는 이미 때가 끼고 먼지가 뒤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액자를 떼어냈다. 그러자 액자를 떤 그곳에는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녀는 눈을 적시며 액자를 닦아 냈다. 그곳엔 그녀가 오래전에 꿈꾼 듯 옛 사진 한 장이 걸려있었다. 오래전 가족들이 여행을 갔을 때 누군가 찍어준 어머니와 자신과 형제들이 모두 담겨져 있는 사진. 그 사진이 그녀의 눈을 또 한 번 훔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