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____을 잃어버렸다.
____을 잃어버렸다.
목표를 잃어버렸다. 동시에 사랑도 잃어버렸다. 오늘도 나는 지난 밤의 의미 없는 애정 행위로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습관처럼 TV를 켜고 냉장고 앞에 다가섰다. 냉장고 앞의 의미 없는 사진과 메모들. 맥주를 따 벌컥벌컥 들이마시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문을 여니 태양을 등지고 누구나 서 있었다. 압도적으로 큰 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렇게 큰 키를 가진 사람은 한 명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위압적인 그림자도, 빛나던 태양도 의미가 없어졌다.
B는 대학교 때 만난 나의 친구이다. 시험을 쳐서 학교에 온 나와는 달리 B는 ‘농구 특기생’ 신분으로 학교에 왔다. 시작은 달랐지만 크고 작은 부상으로 올해 농구를 그만 둔 B는 지금 나와 같이 목표를 잃은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B는 대뜸 내가 마시던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올해부터 농구 대신 자신의 특기로 삼은 ‘음주’를 대낮부터 멈출 수 없는 속도로 시작했다. 한참 동안 술을 마시던 B는 냉장고의 맥주가 바닥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루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리고 TV로 시선을 향했다.
전국 고교 농구대회. 여고부 결승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있었다.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경기는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B를 보며 그제서야 나는 처음부터 B가 TV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B가 주체할 수 없는 음주를 시작한 것은 바로 이 TV 중계 때문인 듯했다. 원래 경기라는 것은 이기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멋있어 보여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 경기는 지고 있는 팀의 선수 하나가 특히나 눈에 잘 띄었다.
“만난 적 있어.”
라는 B의 한마디에 나는 언제인지 물어보았고 B는 그 여자아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3년 전, B가 촉망 받는 고교 농구 선수였던 시절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농구부 선후배로 만난 B와 그 아이 사이에는 그다지 말도 없었다. 다만 그때까지도 키가 크고 있던 B의 키를 물어보는 것이 유일한 대화였다고. 물론 그 아이의 키도 자랐지만 B가 기억하기로 이상한 것은 그 아이가 늘 B의 키와 같은 높이의 수비모형을 세워 놓고 슛 연습을 했다고 했다. 시합 때도 그 아이는 마치 B를 앞에 두었다고 생각하는 듯 필요 이상으로 높게 점프를 했고, 심지어 득점마저도 당시 고교 선수 중 거의 손꼽히던 득점을 자랑하던 B와 맞먹는 득점을 했다는 것이다.
B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아이를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고교-대학간의 결연으로 1년에 한번은 우리 학교로 훈련을 왔었다. 당시 우리 학교 신입생이었던 B의 훌쩍 커버린 키를 보더니 그 아이는 분한 표정을 짓고는 그의 앞을 지나갔다고 했다. 그 이후 벌어진 시합에서 B는 신입생 최초로 한 경기 40득점을 했고 동시에 그 아이는 고교 2년생으로 여고부 최초의 35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B의 말로는 35득점은 자신이 고교 2학년 때 세운 기록이라 했다.
B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경기는 3분도 채 안 남았고 다행히 그 아이의 팀은 점수차를 많이 줄여 역전의 희망이 아직 살아있었다. 대학 2년 차인 올해 농구를 그만둔 B는 몇 주 전 뜬금없는 고교시절 코치의 연락을 받았다. 그때 코치는 자신의 안부를 물었고 통화의 가장 마지막에 지금 B의 키를 물어보았다고 했다.
193센티미터. TV속의 그 아이가 상대편의 선수 중 가장 높은 193센티의 키를 가진 선수를 앞에 두고 계속 슛을 던졌다. 연이은 슛 블록. 질 리가 없는 팀이 지고 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 30초도 안 남은 상황. 그 아이가 마지막 슛을 던질게 확실해 보였다. 71 대 72. 1점차. 그 아이의 득점은 38득점.
4초, 3초, 2초……
그 아이가 또 다시 193센티의 장신을 앞에 두고 슛을 던졌다. 가장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린 그 슛은 너무나도 깨끗하게 그물에 들어갔다. 심판의 손가락 3개가 하늘을 향했고, 그렇게 B와 그 아이의 모교는 그 해의 챔피언이 되었다.
며칠 후 B에게 연락이 왔다. 193센티를 넘어서고, 40득점마저도 넘어선 그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3년 전에 쓰여진 그 편지는 그 아이가 그에게 주려던 러브레터였다. 그도 아직 목표를 잃어버리진 않았다. 나도, 아직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깜찍유경
역시 ‘카메라를 주웠다’ 느낌이 더 좋아 ㅋㅋ
완소동우
이거야??? 이거 좀 실망인데 ㅋ
찌든 현환
날짜가 이번주가 아니잖아 @@
글구 이제 왠만한 작문은 공개안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