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블랙(The Woman In Black)

과거의 끔찍한 기억으로 수년간 악몽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중년의 아서 킵스. 킵스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자신의 경험을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젊은 연극배우 한 명을 고용하고, 고용된 배우는 ‘과거의 젊은 킵스’를, 중년의 킵스는 ‘과거에 그가 만났던 인물들’을 연기하며 당시 경험했던 일들을 연극으로 만들어간다. 으스스한 늪지와 기습적인 안개, 흐느끼는 바람소리… 그 속의 나인 라이브 코스웨이(Nine Lives Causeway, 9개의 삶이 있는 길)에 위치한 엘 마쉬 저택. 젊고 패기있는 변호사 아서 킵스는 그 저택의 유일한 거주자였던 최근 사망한 앨리스 드라블로 부인의 장례식 참석과 서류정리를 위하여 크리틴 기포드로 파견된다. 장례식에서 킵스는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여인을 보게 되고, 무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누구인지, 왜 그녀가 거기에 있었는지 마을 사람들에게 묻지만 사람들은 모두 정색을 하며 대답을 꺼린다. 결국 그 여인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모른채 킵스는 엘 마쉬 저택으로 들어가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줄거리에서 보이듯 연극 ‘우먼 인 블랙’은 공포연극이다. 하지만 요즘 심야에 난무하는 그런 공포연극과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형태의 연극이 더 우수하고, 어떠한 형태의 공포연극이 더 우수하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심야에서 하는 공포연극들이 장면장면 당시에는 무서움을 주지만 연극이 끝나고 나서는 전혀 무섭지 않고 하나의 웃음거리로 되는데에 비해 ‘우먼 인 블랙’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보고나서 다시금 상기시킬때마다 무서워지곤 하는 그런 연극이다.

우먼 인 블랙의 오프닝은 매우 인상적이다. 연극의 시작과 동시에 연극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설정은 시작부터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두 명의 배우가 만들어가는 연극 속의 연극에서 관객은 자신들도 이미 연극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속에 교묘하게 배치된 소품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완벽하게 부합하고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특히 연극적인 요소를 관객들에게 ‘이런 효과음이다’, ‘이런 것들이다’ 하면서 소개를 해도 관객들은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가 없을 뿐더러 그것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또 그것에 효과를 느끼기까지 하는 등 여러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장면의 이동과 설정 역시 인상적이다. 스토리상 수많은 장면의 이동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몇개의 소품들과 배우들의 동작과 배경 소리 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도 어색하지 않는 그런 연극의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더군다나 장소의 설정상 표현하기 힘든 경우, 특히 늪지대 같은 경우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설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클라이막스인 젊은 날 아서 킵스가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관객의 심리적 반응을 노리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연극이 각색이 전혀 없는 상태로 원작 그대로를 받아들인 점은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등장 인물과 모든 명칭까지도 원작의 것을 그대로 활용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팜플렛을 읽지 않거나 본 연극에 대해 사전정보가 전무한 상태로 간다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심리 공포연극으로 끝나고 나서도 주는 으스스함은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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