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랜드 엠파이어 (Inland Empire, 2006)

 

데이빗 린치의 최신작, 인랜드 엠파이어. 개인적으로 ‘로스트 하이웨이’ 이후로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왜인지 없었다. 입대를 비롯한 이런 저런 사건들로 이후의 ‘스트레이트 스토리’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놓쳤다. 그리고 얼마전 스터디를 같이 하던 사람에게서 린치의 새로운 영화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무조건 봐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찾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느낌은 완전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를 보고 사기 당했다는 느낌 그대로 였다. 다만 아직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몇몇 장면들과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10분간을 복원한다면 어느정도 이해는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예술성을 높이 평가 하지 않았던 데이빗 린치가 자신의 기존 코드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시도한 작품의 스토리는 매혹적임에 틀림없다. 마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의 3부를 읽을 때의 느낌처럼 뒷통수를 치는 장면이 정확하게 3번 나오는데

1. 로라 던이 극중에서 드라이버에 찔리는 장면
2. 토끼 사람들이 극중에서 같은 대사를 3번째 읊고 그것이 이전에 극중 인물들이 했던 대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때
3. 오프닝의 여자가 끝까지 TV를 지켜보면서 나중에 로라 던과 키스하게 될 때(정확하게는 키스하고 로라 던이 사라질 때)

이 장면들이 극중 혼란을 그나마 해결해줄 수 있는 코드이다. 예컨대 스토리는 타이틀 시퀀스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방법과 스토리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Inland Empire라는 글자에 비치는 한줄기 빛과 이어져 나오는 오래된 LP판. 그리고 나타나는 오프닝 시퀀스. 관객은 그 여자가 왜 TV를 보는지 모른다. 그리고 왜 눈물 흘리는지도 모르는데 난데없이 나오는 TV는 정확하게 트윈 픽스의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토끼머리를 한 사람들의 대사이다. 그중 암컷 토끼는 지속적으로 다림질을 하고 있고 한명의 수컷 토끼가 소파에 앉아있는데 다른 남자 토끼 하나가 등장한다. 암컷 토끼는 나오미 왓츠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1)

(1)의 구조를 그냥 아 그렇구나 라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정보의 부족이 아쉽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마치 뉴욕 3부작과도 같은 구조로서 그들이 왜 그렇게, 하필 그 장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은 앞으로 이어지는 3시간 동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스토리 서술은 네이버 인용) 로라 던이 열연한 니키 그레이스는 새 영화 <슬픈 내일의 환희(On High in Blue Tomorrows)>에 캐스팅 되길 기대하고 있다. 어느 날 옆집에 이사온 한 폴란드 노파가 인사를 한다며 니키의 집을 방문해서 니키가 기다리던 새영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며 예언하듯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제 시작이다. 동시에 노파는 어제와 오늘, 내일이라는 이야기로 니키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중에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것이 영화속의 일인지 실제 일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것이 인랜드 엠파이어 식의 스토리 텔링이다.) 니키는 이미 <슬픈 내일의 환희>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고 말하는 노파에게서 이상함을 느끼지만 전화로 그 소식을 들은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기뻐한다.


영화 제작이 진행되면서 이 영화가 폴란드의 단편 영화<47>을 리메이크하는 작품이며, 원작의 두 주연배우가 비참하게 살해당했던 미스터리한 사건이 밝혀진다. 동시에 니키와 그녀의 상대 남자 배우 데본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대사를 말하듯 대화를 주고받고, 대화하듯 대사를 주고 받다가 서로의 감정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폴란드 원작의 주인공 남녀의 피살원인이 넘지 말아야 했던 어떤 감정의 선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 후 니키는 점점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에 휩싸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의 정체는 현실과 영화를 혼동하고 동시에 시공을 넘어선 차원의 경지에 이르른 초현실적 경험을 계속한다. 폴란드와 헐리우드, 촬영소와 집, 극장과 길가를 넘나드는 스토리는 계속 이어지고 비밀은 하나둘씩 해답을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니키는 폴란드의 단편영화와 자신의 영화를 동일시하게 되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오프닝의 여인도 TV속 토끼들의 이야기를 보지만 그것은 드 모든 스토리를 아우르는 하나의 스토리일 뿐이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어디에 있는가. 니키, 단편영화의 주인공, 오프닝의 여인이 합일하는 가운데 영화는 끝난다.

가장 아쉬운 점은 이런 스토리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난해하게 끌고가야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영화로서,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런 스토리 텔링은 앞서 구스 반 산트가 ‘라스트 데이즈’에서 그의 자위적 해석을 동반한 자위적 영화를 보여줌으로서 관객을 조롱하였고(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음 -_-;;), 데이빗 린치의 장난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에 못지 않다. 궁극적으로 이제 더이상의 평이한(생활을 담은) 영화는 보이지 않고 형식과 스토리 텔링을 파괴하는 시도를 보이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에 비추어 볼때 마치 철학이 역사적으로 대중과 멀어졌던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